
e데일리뉴스 | [평택=강경숙 기자] 평택시 사회복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공직자 퇴직 후 현재 평화농원을 경영하며 농업인으로 사는 정문호 대표다. 정 대표는 1991년, 경기도 사회복지 공무원 공채 1기로 발령 받아 평택군에 단 한 명 배치된 사회복지 공무원. 이후 35년간 평택 사회복지의 현장을 지켜온 그는 퇴직 후에도 그동안 해왔던 복지사 일과는 전혀 다른 농업인의 길을 걸으며 또 다른 복지 실천으로 지역사회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행하라’는 교훈 새겨 실천
올해 이순(耳順) 초반의 정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50년 이상 기독교 신앙이 몸에 밴 한 집사이다. ‘어려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을 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의 가치로 삼았다. 또 하나 ‘선한 영향력을 행하라’는 교훈도 가슴에 새겼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것이 본인의 사회복지 철학이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복지사회’라는 관점이다.
왜?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회복지학 전공을 선택했다. 졸업한 후에는 유료 양로원과 노인상담소, 법무부 갱생보호공단에서 복지 업무를 실천했고 1991년에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평택군 사회복지 공무원은 단 두 명이었는데 같이 발령받은 동료가 3개월 만에 퇴직하면서 사실상 ‘평택 사회복지 1호 공무원’이 된 셈이다.
그는 읍사무소를 시작으로 평택시 사회복지과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회복지 행정에 몸담았다. 전국 단위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9대 회장 3년의 재임 기간에는 무엇보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권익을 위해 전국 단위에서 목소리를 내며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앞장섰다

민‧관 협력 부족…상생으로 복지 사각지대 없애야
정 대표는 35년전 평택 사회복지의 출발을 “유아기 걸음마 수준”이라고 회상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하기 싫은 업무, 기피 업무 중 단연 1위였다. 민간 사회복지기관도 수용시설 위주로 몇 곳 되지 않았다. 지금은 3개 시군이 통합한 평택시가 65만의 인구로 늘어가면서 1명이었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260여명이 되었다. 민간복지기관도 많이 늘었고 노인복지관이나 노인요양시설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많아졌다.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그는 그동안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가 관이 짠 틀에 따라가는 관 주도적이다. 양적·질적 성장은 했지만 여전히 민‧관의 협력이 부족하다. 관과 민이 같이 발전하고 관과 민의 역할이 상생 발전해야 복지 사각지대도 해소되며 수준 높은 밀착형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정책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성남시의 사례를 들었다. 성남시는 해외 연수, 공동 워크숍, 합동 토론회 등을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연구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택복지재단 안정화, 공공복지 대상 수상
사회복지 공직생활을 하던 중 2005년부터 3년간은 전국 규모인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9대 회장을 역임했다. 일본과 공적부조연구에 대한 학술교류활동, 보건복지가족부 근무 시에는 사회복지정책 수립, 사회복지사 1급 국가고시 출제위원도 맡았다. 그의 여러 활동이 인정받아 민간기관에서 주최해 시상하는 공공복지 대상을 수여 받기도 했다.
2021년 7월 사회복지직 공무원 서기관으로 퇴직한 그는 평택복지재단 사무처장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여러 사건‧사고로 우여곡절이 많고 ‘바람 잘 날 없었던’ 복지재단이었지만 사무처장의 역할로 여러 가지가 안정화 되었다. 흔들리던 재단, 전문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안정화시킨 것이다. 평택복지정책에 대해 연 5~7건 이상 연구를 하면서 정책적 제언을 했다. 또한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가족센터 등 8개 시설을 운영하며 평택복지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그 바람에 타 지자체들이 복지재단을 설립 할 때 평택복지재단을 가장 먼저 벤치마킹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당시 평택복지재단은 평택시 복지수준을 한 차원 격상시키는 큰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농원 통한 기부는 자신의 존재 의미
퇴직 후 ‘농업인’으로 변신했다. ‘평화농원’을 경영하며 작으나마 기부하는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퇴직 전인 2017년부터 준비한 평화농원은 평택시 진위면과 서탄면 두 곳에 있다. 현재 준비 중인 블루베리 농장까지 합치면 4000여평이 넘는다. 사과·오이·토마토, 대추 등을 재배하며 공직자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정 대표의 취약계층 기부 활동은 농원 경영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수익이 창출되는 일부를 매월 7~8곳의 장애인복지관·지역아동센터 등에 꾸준히 후원한다. 농원을 통한 기부는 사회복지의 연장선이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는 길이라고 못 박는다.
앞으로도 농업으로 수익을 내면 지역사회 봉사뿐만이 아니라 해외봉사도 계획하고 있다. 평소 장애인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푸른날개 장애인 합창단 후원회’ 회장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 초록우산평택후원회 수석부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으며 지역아동센터 등과 자매결연도 맺고 후원과 자원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장애인복지관 환경 매우 열악
35년 전문가의 관점에서 평택 사회복지 현장의 시급한 문제로 복지시설 확충을 들었다. 특히 장애인복지관이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꼽는다. 남부장애인복지관은 팽성에 있어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매우 불편하고 북부장애인복지관은 전국에서 가장 작은 면적이며 직원 또한 매우 적다. 최근 장애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환경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편이라는 것. 서부나 고덕국제신도시에 추진 중이거나 새로 계획되는 장애인복지관의 신속한 사업 추진을 독려했다.
“농원을 운영하면서 사회복지와 접목시켜 나름대로 한 차원 더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다”이와 더불어 “농업인이 되었으니 농어촌 지역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고 싶다”는 그의 목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가 ‘복지’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평택 사회복지의 역사이자, 신앙과 소명으로 이어온 실천의 기록이다. 사회복지 공무원 1호에서 복지재단 안정화, 농원 경영과 기부까지. 오랜 공직자의 생활에 이어 농업인의 제2의 인생을 살면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소망이 뼈 속 깊은 ‘믿음’으로 전신갑주를 입은 것처럼 단단하고 고명하게 전해진다./kkse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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